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륜석(李侖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64683
  • 전몰일자 : 19520716

공훈사항

이륜석 이등중사는 1928년 1월 17일에 경기도 김포군(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 일대로 철수하던 1950년 12월 초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륜석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은 1.4후퇴로 37도선의 평택-안성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전력을 회복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려 했다. 제5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여 9월 4일에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을 점령하였으며, 9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세 번씩이나 1,211고지를 점령 및 상실을 거듭하다가 10월 14일에 가칠봉 전투를 종결했다. 그 후 사단은 10월 20일에 이 전선을 국군 제3사단에 인계 후,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1952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제35연대를 우측 전방에 배치하고 이륜석 이등중사의 제27연대는 예비로 강원도 간성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서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사단은 同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륜석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351고지에서 방어 중 7월 16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륜석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7961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ㄷ-07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