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류택(李流澤)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800642
  • 전몰일자 : 19500719

공훈사항

이류택 하사는 1930년 7월 5일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4월 18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던 제1병참단에 입대하여 병참관련 특기교육을 이수하고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수도사단은 1949년 6월 20일 기갑연대, 제17연대, 포병대대 및 독립 제1대대를 기간으로 서울시 용산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창설된 후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개편되었다. 당시 제1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동두천 일대의 38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류택 하사는 즉각 38도선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은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화기가 없었다. 당장 서울이 위태로워졌다. 이에 육군본부는 서울 방어를 위해 수도권의 부대는 물론 후방지역의 부대까지 모조리 서울 북방에 투입하도록 명령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과 전차부대는 6월 25일 오전 초성리를 돌파해 동두천으로 진격하였다.
이류택 하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했다. 그가 소속된 부대는 북한군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연대는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107전차연대 소속의 전차 수십 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아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하였고,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6월 29일부터 한강 및 시흥 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제7사단의 남하를 6일간 지연시켰으며 7월 6일에는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를 시작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류택 하사는 1950년 7월 19일 보은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류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2-ㅅ-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