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량종(李良鍾)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9666293
  • 전몰일자 : 19520715

공훈사항

이량종 병장은 1932년 5월 10일에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면(現 관산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2년 1월 중순경 입대하여,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량종 병장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편 중공군의 1951년 5월 공세 이후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은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렸고, 11월 27일 회담에서 양측은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합의했다. 이에 양측은 대규모작전을 자제했고, 전쟁은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전과 전선 개선, 그리고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제5사단은 1952년 1월 13일부로 육본 직할에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부대 재편성 및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 후 사단은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여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36연대를 좌측 전방, 제35연대를 우측 전방에 배치하고 이량종 병장의 제27연대는 예비로 강원도 간성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시에 사단 전초진지는 예비연대에서 투입해서 작전을 실시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同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11월 초까지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량종 병장은 351고지를 사수하려고 선두에서 소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1952년 7월 15일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량종 병장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ㄹ-07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