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량재(李量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732
  • 전몰일자 : 19501005

공훈사항

이량재 일병은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초,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량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중순, 미 제24사단은 낙동강 돌출부로 알려진 창녕-영산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은 8월 5일 시작된 대규모 공세 시에 미 제8군의 퇴로인 밀양-부산을 차단하려는 기도를 갖고 창녕과 영산 지역을 돌파하기 위해 맹렬히 공격했다. 한때 북한군의 야간기습공격으로 낙동강 돌출부 일대가 피탈되었다. 북한군은 계속해서 클로버고지를 점령한 후 오봉리 능선으로 진출하여 아군 후방을 위협했다. 적이 점령한 클로버고지 일대는 아군 후방의 주보급로는 물론 밀양까지도 관측이 가능한 요충지였다.
이량재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8월 18일에 상급부대로부터 지원받은 국군 제17연대, 미 제2사단 제9연대, 힐 특수임무부대, 미 제1해병여단 등 가용예비대를 모두 투입하여 수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북한군을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사단은 8월 20일에 미 본토에서 증원된 미 제2사단에게 방어지역을 인계하고, 삼랑진으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가 되어 부대정비에 집중했다.
낙동강방어선에서 기계-안강 지역이 북한군 제12사단에 의해 돌파될 위기에 처하자, 미 제24사단은 8월 27일에 신속히 경주 지역으로 투입되어 무릉산~곤계봉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이량재 일병은 미군 장병들과 함께 격렬했던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했다. 북한군은 9월 12일부터는 반격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 제24사단은 9월 16일부터 개시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북한군은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르고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9월 20일 야간부터 퇴각하기 시작했다. 사단은 신속히 때를 놓치지 않고 김천-영동-옥천 방향으로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하여 9월 28일에 대전을 탈환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5일에 후방지역작전은 미 제25사단에 인계하고, 북진작전을 위해 문산 일대로 이동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대전 일대에 준동하던 잔적을 소탕하던 중 안타깝게도 숨어 있던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량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89-ㅊ-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