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래흥(이래흥)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2120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래흥 대위는 충청북도 진천군 구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이후 정부수립 준비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8년 8월 9일, 육사 7기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11월 11일에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그는 충북 청주의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제7연대는 1949년 5월 6일에 강원도 춘천으로 이동하여 제6여단에 예속되었다.
제6여단은 동년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되었고, 전쟁 발발 직전에 제2, 제7, 제19연대로 편성되었다. 이래흥 대위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좌측연대로서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 방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화천에서 춘천에 이르는 도로상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대전차 진지 3개를 구축했다. 그리고 중대마다 2∼3개소의 통나무로 만든 유개호를 마련하고 호(壕) 간에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또한 방어에 유리한 소양강 변과 춘천을 감제하는 164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전쟁 발발 1개월 전인 5월 하순에 공사를 마쳤다. 연대는 비교적 다른 부대에 비해 방어준비태세를 철저히 했다. 또한 사단은 전쟁 발발 직전에 38도선상에서 남침을 예견하는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자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 유지를 강조했다.
이래흥 대위가 소속된 제7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곧바로 전방 방어지역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후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아군 방어진지를 돌파하고, 이어서 보병들이 후속하여 공격했다.
이래흥 대위가 지휘하는 중대는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하고,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 부대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12시경에 중과부적으로 춘천 북방의 164고지로 철수했다. 북한군의 공격은 6월 26일에도 춘천을 점령하고자 계속되었다. 아쉽게도 제7연대의 전투력은 북한군 제2사단의 전투력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하였다. 이날 그는 중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래흥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1묘역-209판-338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ㄷ-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