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래영(李來永)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0230680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래영 병장은 1931년 5월 9일에 충청남도 대전시(現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29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래영 병장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4후퇴로 37도 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23만 명의 대병력으로 서울재탈환 작전을 실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1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2월 9일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 후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했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 후 사단은 3월 3일에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지역의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는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했다.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면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19일에 목표인 인제를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래영 병장이 소속된 제27연대는 사단 예비로 후방지역 경계를 담당했다.
사단은 4월 22일 자정부터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아 4월 24일에 인제를 적에게 빼앗겼다가 4월 25일에 재탈환했으며, 5월 9일부터 19일까지 강원도 인제 일대 한석산 서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제27연대를 주력으로 하여 공격하는 홍천 북방지역 전투를 시행했다. 이 전투에서 이래영 병장은 소대원과 함께 적 진지를 돌파하던 중 1951년 5월 18일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래영 병장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6판-5면-1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ㄲ-09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