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래선(李來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956
  • 전몰일자 : 19501213

공훈사항

이래선 일병은 경기도 화성군 오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남진으로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물리치고 반격준비를 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천 전투에서 적 제15사단을 포위 격멸하고 반격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건너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다. 연대는 20일 저항하는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연대 장병들은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원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이 무렵 온정리와 운산에서 아군을 격파한 중공군 제38군이 청천강 이북의 국군과 유엔군을 포위하고, 북상하는 아군 증원부대를 차단하려 했다. 이에 아군은 구장동-덕천 간의 진지를 점령해 중공군을 저지하고자 했고, 사단은 11월 1일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오히려 중공군의 역습에 밀려 후퇴했고,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 일대를 점령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11월 3일 연대는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7일까지 적과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비호산을 지켜냄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1월 14일 연대는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연대는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지를 끝까지 지켜 내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13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래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6판-5면-0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0-ㅋ-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