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래복(李來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703589
  • 전몰일자 : 19500626

공훈사항

이래복 이등중사는 1929년 5월 25일에 충청북도 청원군(現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9일 육군포병연대에 입대했다. 同 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편되었다. 이래복 이등중사는 포병학교 예속의 제1포병대대에 배치되어 조교로서 포병 장병 교육훈련에 진력함으로써 포병 육성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편 포병은 1948년 6월 26일 서울 용산에 제2포병훈련학교를, 경남 진해에 제3포병훈련학교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년 11월 20일 제2, 3포병훈련학교를 해체하고 육군 잠정포병단을 설치하여 그 밑에 육군포병학교를 두었다. 포병단은 동년 12월 15일 포병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이는 1949년 6월 20일 다시 육군 포병연대로 개편되었으며,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었다.
제1포병대대는 1949년 10월 24일 제8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4월 22일까지 진행된 태백산 일대에서 무장 유격대 토벌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강원도 강릉으로 이동하여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 남침을 감행하자 강릉에서는 6월 25일 새벽 4시부터 북한군 제1경비여단의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보다 앞서 강릉군 강동면 정동진리 등 명동 해안으로 상륙한 적 육전대의 선발대가 해두보를 확보하고 후속부대가 속속 상륙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1경비여단은 주공을 7번 도로 축선에 투입하여 주문진으로 진격을 개시했으며, 조공은 양양-서림리, 남양리-원일전리의 계곡 접근로를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에 제8사단은 강릉 일대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다 평창을 거쳐 충북 제천 일대로 지연전을 펼쳤다.
제1포병대대는 강력한 화력지원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사단의 철수를 엄호했으나, 사상자가 속출하고 탄약이 바닥났다. 이래복 이등중사는 1950년 6월 26일 강릉 전투에서 전포반원을 지휘통제하며 포병사격을 지원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래복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767 국)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5묘역-7판-119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6-ㅊ-02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