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래문(李來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151
  • 전몰일자 : 19510920

공훈사항

이래문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조마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래문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9연대는 진주에 지휘소를 두고 경상남도 지리산 동남쪽 지역을 대상으로 공비소탕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공비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 집중한 시기였다. 특히 제9연대는 1951년 3월 17일 화학산 일대에서 게릴라 지도급 인사를 포함하여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공비들은 세력이 소멸되어 조직적인 활동은 불가하였다.
이래문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였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를 속초-간성 일대에서 저지하다가 25일에 철수하여 양양 북방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5월 7일부터 반격하여 마등령-989고지를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공세로 다시 철수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그리고 5월 22일부터 반격하여 6월 중순까지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이래문 일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8월 17일부터 24일까지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884고지를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9월 25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래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ㄷ-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