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락락(이락락)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905239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락락 이등중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산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3월 하순, 서울 용산의 제9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포천으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 및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했을 때, 제9연대는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방어진지를 점령했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태릉으로 철수하여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했다. 이후 6월 28일 새벽에 한강교가 폭파되자 용마산-광나루로 철수했고, 7월 5일 평택에서 재편성할 때 제9연대는 해체되고, 장병들은 수도사단 제1연대에 통합되었다.
이락락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진천에서 안동으로 이동하여 7월 28일까지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낙동강방어선에서는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후 9월 2일에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강력히 저항하다가, 9월 4일에 형산강 이남의 호명리 선으로 철수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유엔군이 반격할 때에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제11사단을 창설하기로 했다(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07호’). 이에 9월 25일부로 대구에서 사단본부를 편성하고 제9연대, 제13연대, 제20연대를 예하 부대로 편성했다. 당시 이락락 이등중사는 제9연대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창설된 제9연대는 10월 4일부터 지리산 동남쪽 지역에 대해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1사단은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수행했다. 제1단계 작전은 1950년 10월 1일∼10월 30일까지로 행정기관을 복구하고 적정을 수집하는 한편, 장병들에 대한 전투 훈련에 주력하면서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이 작전기간은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입각해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공비 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이락락 이등중사가 소속된 중대는 1951년 1월 1일에 공비토벌작전을 나갔다가 1개 소대 규모의 게릴라(북한군 패잔병)를 발견하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락락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7면-355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ㄲ-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