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등우(李騰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24101
  • 전몰일자 : 19501008

공훈사항

이등우 이병은 1929년 2월 23일에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9월 21일에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등우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미 제24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사단은 9월 16일부터 개시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북한군은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르고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9월 20일 야간부터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등우 이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신속히 때를 놓치지 않고 김천-영동-옥천 방향으로 퇴각하는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제19연대가 선두에서 공격했고, 제21연대가 후속하여 9월 25일에 김천을, 9월 26일에 영동을, 9월 27일에 옥천을 거쳐 9월 28일에 대전을 탈환함으로써 2개월 전의 대전전투에서 패배를 설욕했다.
이후 미 제8군은 미 제1군단에게 현 작전지역을 뒤따라 올라가는 미 제9군단에게 인계한 후 38도선을 돌파하도록 하고, 미 제1군단은 미 제1기병사단이 주공으로 평양을 향해 진격하는 한편, 미 제24사단과 국군 제1사단이 조공 또는 예비로 운용토록 했다. 이에 이등우 이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10월 5일에 후방지역작전은 미 제25사단에 인계하고, 북진작전을 위해 문산 일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군단의 조공으로서 좌익을 담당하여 개성-백천-해주-재령-사리원 방향으로 공격하기로 했다.
이등우 이병이 소속된 중대는 10월 8일에 공격준비 중 북한군 패잔병들의 습격을 받아 즉각적인 응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안타깝게도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등우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7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ㅅ-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