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득화(李得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1899
  • 전몰일자 : 19501105

공훈사항

이득화 일병은 1931년 2월 28일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려한 후 제1군단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아군은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창설하고 28일부터 한강 선에서 방어전투를 실시하였다. 한강을 도하한 북한군에 밀린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철수하여 수원을 거처 경기도 평택에 도착한 후, 7월 5일 육본 일반명령 제2호에 의거 제1군단으로 개편되었다. 초대 군단장은 김홍일 소장이었고, 7월 15일 2대 군단장으로 김백일 준장이 부임하였다.
이득화 일병이 배치된 군단은 9월 하순부터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기계-강릉을 도착할 거쳐 10월 1일 예하 제3사단을 선봉으로 38도선을 최초로 돌파하고 미 제10군단이 때까지 원산항을 확보하기 위하여 안변, 용포리, 용탄리 및 용탄강 입구를 주저항선으로 하고 영흥을 확보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문천, 영흥, 정평, 함흥 및 파춘장, 흥남 축선을 따라 진격하여 북한군을 섬멸하였다.
그 후 이 일병이 소속된 군단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여 횡성 전투(제5사단), 동해안지구 전투(수도사단 및 제11사단)에서 남하하는 공산군을 저지하였으며, 월비산전투(수도사단, 제11사단), 351고지 일대 전투(제5사단, 제11사단, 제15사단)에서 공방전을 전개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득화 일병은 38도선 부근에서 방어 작전을 실시하던 중 1950년 11월 5일 부여된 작전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득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77-ㅅ-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