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득우(李得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01650
  • 전몰일자 : 19521118

공훈사항

이득우 일등중사는 1924년 11월 25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봉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6월 중순에 제2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득우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17연대는 11월 7일부로 재창설된 2사단의 예하 부대로 의정부 및 철원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제2사단은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38도선으로 철수할 때에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 안동으로 이동하여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다시 전방작전에 투입되었다. 제2사단은 1951년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화천-철원-김화를 거쳐 적근산-육단리까지 진격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2사단은 공세적인 행동으로 1951년 10월 13일부터 21일가지 금성-금화 진격전으로 금성 서남쪽 직목동까지 진출했다. 이후 다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1952년 3월 2일부로 사창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으로 전투력 향상에 매진했고,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며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이득우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였고, 이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수차례 있었다. 연대는 10월 20일에 저격능선을 탈취한 후 중공군의 공격을 수차례에 걸쳐 격퇴했으나, 11월 11일과 13일에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저격능선에서 퇴각했다.
제17연대는 며칠 간의 전투준비를 하여 11월 17일 아침에 저격능선의 돌바위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포격 지원을 받으며 공격을 개시하였다. 연대는 2시간여의 교전 끝에 목표를 탈환하였고, 다음날 저격능선상의 A고지와 돌바위고지를 모두 장악했다. 이득우 일등중사는 11월 18일 전투에서 소대선임하사로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득우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7494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ㅁ-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