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득암(李得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430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득암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낙동강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9월 초순 대구에 있는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였다. 당시 전황이 워낙 급박하였던 관계로 신병들은 불과 10일 정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부대에 배치되는 실정이었다. 이 일병도 10일 정도의 훈련을 받고 제5교육대에 배치되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자, 신병교육대 창설을 서둘렀다. 이에 따라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그 후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고,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8월 26일 제1훈련소에 제1·2·3·5·6·7·8·9교육대가 편성되었다. 이어 제2·3·5·6·7훈련소가 창설되었는데, 이 중 제5훈련소는 8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에서 창설되었다.
이득암 일병은 조교로서 신병 교육에 열성을 다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맞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왔다. 9월 20일 대구 시내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 일병이 소속된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득암 일병은 항상 선두에서 수색하다가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득암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위패(09판-6면-17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2-ㄷ-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