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득성(李得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3750
  • 전몰일자 : 19520917

공훈사항

이득성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 일대에서 전선이 교착된 시점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0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해 고지쟁탈전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동북방의 가칠봉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중공군 5월 공세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피·아간에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협상이 열렸고, 이후의 전투양상은 휴전협상에서의 설전과 더불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진행되었다.
연대는 서희령 일대의 전선을 담당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북한군은 제3사단이 탈취한 전진기지를 탈환하기 위해 계속해서 역습을 실시했으나, 사단은 이를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석장리 일대에 배치되어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계속 실시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진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적과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전개했다. 이 일병은 9월 17일 수색정찰작전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에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득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8판-1면-03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ㅍ-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