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득도(李得道)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6

공훈사항

이득도 순경은 1923년 9월 20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파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평택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파주경찰서는 이날 북한군이 남침하자 경비주임 지휘하에 50명을 적성지서에 급파했다. 적성은 아군 제1사단 정면의 최 우측에 있는 적의 접근로에 위치하여 가장 먼저 북한군 보·전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 순경이 포함된 서원들은 적성으로 출동 도중 적 1개 소대와 조우하여 30분간 교전이 벌어졌는데, 때마침 제13연대의 1개 소대가 지원되어 합동작전으로 적을 격퇴했다. 그러나 적의 후속부대의 증원으로 말미암아 적성지서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금파리로 철수하여 그곳에 배치된 국군과 더불어 개활지로 적을 유도하여 격퇴했다.
6월 25일 밤 북한군은 후퇴하는 아군의 뒤를 이어 임진강 철교를 도하하여 문산에 진출했다. 파주경찰은 하동면에 출현한 적 1개 소대와 교전이 벌어져 적을 모두 격퇴했다. 그러나 파평 쪽에서 남진한 북한군이 후방을 위협함에 따라 밤 9시 봉일천을 경유하여 고양 방면으로 후퇴했다. 이 순경이 소속된 파주경찰은 고양-부천-광명을 거쳐 7월 2일 수원에 도달하였으며, 이곳에서 경기도 비상경비사령부의 지시에 의거 수원지역 거점방어, 철도경비, 오열 색출,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수원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파주경찰은 7월 4일 수원 철도경비 임무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북한군이 수원을 점령함에 따라 파주경찰은 평택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파주경찰은 다른 경기지역의 경찰병력과 함께 평택-오산, 평택-안성, 평택-천안 간 보급로 경비, 평택 철도 경비, 오열 색출,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6일 평택 철도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파주경찰과 평택을 점령하려던 북한군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득도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4면-19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ㅇ-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