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희(李斗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7841
  • 전몰일자 : 19510301

공훈사항

이두희 일병은 경상남도 창원군(現 창원특례시 북부 지역)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로 평택-삼척선으로 후퇴하던, 1951년 1월 초순경 입대하여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7사단 제16포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이두희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시작했고, 제7사단은 적의 대규모 공세를 받고 후퇴하여 강원도 횡성 북방을 거쳐 1951년 1월 8일 강원도 영월 북서쪽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했고, 사단은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하고 적을 섬멸했다. 이어서 사단은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2월 17일부터 18일까지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사단은 지역내에 침공한 적을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고, 북한의 덕천에서 고전한 사단의 명예를 회복했다. 전투 기간 중에 사단은 북한군 1,044명을 사살하고 41명을 생포하였으며, 박격포 2문과 총기류 237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중공군의 제4차 공세를 격퇴한 국군과 유엔군은 재반격작전으로 전환해 중동부지역으로 침투한 공산군을 격멸하기 위한 ‘킬러작전OperationKiller)’을 전개했다.이 작전의 결과로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3월 초에 한강 남안-횡성-강릉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와 같은 킬러작전(2월 21일~3월 6일) 시 사단은 강원도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리퍼작전(3월 7일~3월 31일) 때는 강원도 평창군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두희 일병이 소속된 제16포병대대는 기동이 잦은 상황에서 포진지를 이동해 가면서 기동부대에 포병화력을 지원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병으로서 임무 완수를 위해 킬러작전에서도 포반원과 함께 적을 향해 쉴 새 없이 포탄사격을 하다가 2월 25일 적 대응사격에 맞아 중상을 입고 부산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두희 일병은 병원에서 신속하게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3월 1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희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ㅈ-06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