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희(이두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12345
  • 전몰일자 : 19500904

공훈사항

이두희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힘겹게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두희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두희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분전하였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적 제12사단은 기계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비학산 일대로 철수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20일까지 비학산 일대에서 잔적소탕을 완료하고 기계 북쪽으로 새로운 진지를 편성하였다. 사단은 22일부터 비학산 일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병과 장병들은 경주 북방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두희 일병은 1950년 9월 4일 경주 북방 일대에서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적이 쏜 탄환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75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ㅁ-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