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훈(李斗勳)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8103015
  • 전몰일자 : 19510527

공훈사항

이두훈 병장은 1933년 9월 28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병장은 1950년 9월 2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병장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3사단은 9월 14일까지 포항과 형산강 변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30일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병장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했고, 10월 10일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다가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4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작전과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병장은 양양 일대에서 보급로 경계작전 중에 5월 27일 적 정찰대와 조우하여 교전 중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훈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ㄱ-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