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환(이두환)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5898
  • 전몰일자 : 19510116

공훈사항

이두환 소위는 충청북도 충주군 교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소위는 장교가 되고자 육군종합학교에 보병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1950년 11월 2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청천강 일대에서 접전 중이었고, 제7사단은 함경남도 개천군 군우리에 집결하여 차후 작전을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11월 3일부터 7일까지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 제38군단과 혈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사단은 11월 22일 묘향산으로 공격을 개시했으나, 중공군 제38, 42군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승호리-신계-시변리로 축차적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며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제2군단에 배속되어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다. 공격 첫날 제2군단은 북한군 제2군단 예하의 4개 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방어진지 일부가 무너져 적에게 포위될 위기에 직면했다. 제5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강력한 공격에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한편, 중공군 제3차 공세 이전인 12월 하순부터 북한군 제2전선부대가 국군의 주저항선 후방인 홍천과 현리 일대로 침투하여 거점 확보를 시도했다. 이와 함께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아군 부대 간격을 뚫고 기동하여 4일 홍천을 점령하고 선두부대가 횡성 방면으로 진출했다. 적의 압박이 가중됨에 따라 연대는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석항리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병력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월 14일 대야리로 이동하여 24일까지 치열한 교전 끝에 영월을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소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1월 1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환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장병1묘역-202판-72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7-ㄴ-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