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환(李斗煥)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5700727
  • 전몰일자 : 19511103

공훈사항

이두환 병장은 충청남도 대전시 문창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두환 병장이 소속된 연대는 아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파죽지세의 진격으로 1950년 9월 28일에는 서울을 수복하고 38도선으로 진격하였다. 10월 1일에는 동해안에서 국군 제3사단이 38도선을 돌파하고 이어 10월 9일에는 제1사단과 서부전선의 부대들이 38도선을 넘어 북진에 돌입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서울을 향해 시작되면서 이 병장과 장병들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1951년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두환 병장과 연대병력은 4월 28일 북한군 제8사단과 금촌, 동거리 일대에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울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29일에는 화전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그가 소속된 연대는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후 1951년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 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단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였다. 이 병장이 소속된 연대는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이후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 준비 사격에 이어 오전 6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병장과 연대병력은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의 91고지와 146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사격전을 전개하며 최후까지 북한군과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이두환 병장은 1951년 11월 3일 임진강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환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ㅍ-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