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화(李斗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3981
  • 전몰일자 : 19500811

공훈사항

이두화 일병은 1926년 12월 5일 경상북도 대구시 인교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힘겹게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8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두화 일병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대구를 중심으로 왜관 북방 328고지에서 낙정리까지 방어하고 있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예하의 제15· 제13· 제1사단 등 3개 사단을 함창·상주 일대에, 제2군단 예하의 제3· 제10사단 등 2개 사단을 왜관 서측에 집결시켜 총 5개 사단으로 대구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위천 하구에서 왜관 북쪽까지 정상방어의 4배인 42km의 강 연안지역에 제15연대, 제11연대, 제12연대 순으로 배치하였다.
1950년 8월 8일 미명부터 국군 제1사단은 적 제13사단과 더불어 제15사단의 도하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전날부터 선산-구미에서 1.2m의 강을 도섭으로 건너기 시작하였다. 적은 마진나루에 은밀히 수중교를 부설하여 도하시킨 전차와 함께 1개 연대병력으로 제15연대 정면을, 1개 연대병력으로 강창나루에서 제11연대 정면을 각각 도하 공격하였다. 이두화 일병과 연대병력은 유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적 전차 4대를 파괴하는 등 저지사격을 가하였지만 결국 도하를 허용하여 해평천 선으로 물러나 적을 저지하기로 하였다. 연대는 다음날 적의 접근을 관측하고 준비된 탄막사격을 집중하는 동시에 대전차 특공대를 투입하여 전차 5대를 파괴하는 등 큰 전과를 달성하면서 진지를 고수하였다. 이어 10일 새벽 즉각 역습을 전개하여 적을 완전히 강 서쪽으로 격퇴하였으며, 유엔공군기 편대가 이틀간 마진나루에 설치된 수중가도에 집중적으로 폭격을 가하였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신병에 불과하였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였다. 그러나 이두화 일병은 1950년 8월 11일 의흥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9판-6면-0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0-ㅈ-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