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화(李斗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0746
  • 전몰일자 : 19520404

공훈사항


이두화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1년 10월경 입대 후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아군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아군은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이때 제9사단은 10월 5일부로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10월 17일에 미 제3사단이 맡고 있던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이 시기 휴전회담이 진행되어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속에서 전초진지를 탈취하기 위한 소규모 전투와 수색정찰이 진행되었다. 한편 휴전회담장에서는 유엔군과 적군 측이 서로의 제안을 일정 정도 포함해 가며 협상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유엔군과 북한군은 1951년 11월 27일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1952년 전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제9사단의 좌전방에 배치된 연대는 1952년 4월경에 사단 정면에 위치하여 아군의 관측과 기동에 제한을 주던 300고지를 기습해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하고 적병 일부를 사살 후 철수했다. 이후 제9사단은 김화지구에서 전초 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1952년 4월 4일 수색작전 중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화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ㄹ-01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