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홍(李斗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21457
  • 전몰일자 : 19510303

공훈사항

이두홍 하사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했다. 이두홍 하사는 포병으로 분류되어 경상남도 진해에 위치한 포병교육대에서 주특기 교육을 받고 교육대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포병은 1948년 6월 26일 서울 용산에 제2포병훈련학교를, 경남 진해에 제3포병훈련학교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년 11월 20일 제2, 3포병훈련학교를 해체하고 육군 잠정포병단을 설치하여 그 밑에 육군포병학교를 두었다. 포병단은 동년 12월 15일 포병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이는 1949년 6월 20일 다시 육군포병연대로 개편되었으며,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었다.
6·25전쟁 초기 전투에서 많은 부대가 극심한 피해를 입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5일 사단을 재편했다. 이때 포병도 기존의 제1·3·5·6·7포병대대를 해체하여 제1포병단을 창설하고, 예하에 제10·11·16·17·18·50포병대대를 창설했다. 제1포병단은 9월 10일 포병교육대로 개편되었고, 1951년 3월 10일 육군포병학교로 다시 개편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미처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지방 좌익 빨치산 세력들과 연계하여 유엔군 후방지역을 교란했다. 이들은 후방의 지원 시설이나 군사학교를 습격했다. 적 게릴라들의 활동은 중공군이 참전하고 전선이 남하하자 더욱 활기를 띠었다.
당시 포병교육대가 위치한 진해는 군사학교와 후방 지원시설들이 위치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적 게릴라들이 출몰했을 때 포병교육대에서도 출동하여 소탕작전을 펼치곤 했는데, 학교는 조교를 비롯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두홍 하사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었을 때는 이들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1951년 3월 3일 적 게릴라들이 교육대를 습격했고, 이두홍 하사와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두홍 하사는 추격조장으로 조원들을 통제하며 도주하는 게릴라들을 추격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홍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7판-8면-17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5-ㅁ-066)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