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형(李斗炯)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3

공훈사항

이두형 경사는 1925년 3월 22일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강원도경 주문진 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영천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개전과 동시에 북한군 제5사단은 아군의 정면에서 공격을 하고,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와 육전대인 제549부대는 아군의 후방지역 해안으로 상륙하여 아군 제10연대와 제21연대를 차단, 각개격파를 기도했다. 주문진경찰서 관내인 서림에서 잔교에 이르는 정면에 북한군 제5사단이 공격을 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북한군 제766부대는 강릉 후방의 안인진에, 제549부대는 옥계면 정동진에, 제200지대는 임원진에 기습 공격을 가했다.
7월 1일 강원도 경찰은 영월과 울진을 제외하고는 군의 작전에 따라 남쪽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강원경찰은 영월 일대에서 지연전을 끝내고 경북 영주로 철수하여 각서 단위로 집결한 병력을 전투대로 통합하여 재편성하였는데, 주문진·인제·횡성경찰은 제6전투대대로 편성되었다. 강원경찰의 일부는 제8사단의 작전통제하에 죽령에서 풍기-영주-예천 선에 이르는 지연전에 참가했다.
7월 10일 단양에서 남진한 북한군 제12사단은 죽령으로, 영월 방면에서 우회한 북한군 제8사단은 아군 정면을 공격함으로써 피·아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3일간에 걸쳐 악전고투를 계속한 끝에 제6전투대대를 비롯한 경찰부대는 진지를 포기하고 7월 12일 군부대와 함께 풍기로 철수하여 방어선을 형성했다. 이후 경찰부대는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군부대와 함께 영천 일대까지 후퇴했다.
7월 23일, 영천에서 방어선을 형성하여 적을 저지하던 제6전투대대와 영천을 목표로 공격을 하던 적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이두형 경사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형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ㄹ-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