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행(李斗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09635
  • 전몰일자 : 19521022

공훈사항

이두행 이등중사는 1932년 2월 28일에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을 하고 있을 때인 1950년 10월 중순,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두행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중순, 제2사단은 철원-포천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할 때에 사단은 양문리-탑두울 선을 잇는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2사단은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1951년 1월 2일 철수하였다. 이후 이천을 거쳐 안동 지역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하고, 4월 28일에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 일대 전방지역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적인 반격으로 6월 15일에 적근산-육단리-원당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김화-금성진공작전을 실시하여 주방어선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들을 확보했다.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고, 사단은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으로 전기 전술을 숙달하였다. 이후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친 뒤 1952년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하여 진지보강과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며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 행동을 강화하기로 했고, 이에 이두행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군단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저격능선은 방어진지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로서 오성산을 공격할 때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이두행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였고, 이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연대는 10월 20일에 저격능선을 탈취한 후 중공군의 공격을 수차례에 걸쳐 격퇴했다. 그리고 10월 22일에 저격능선을 방어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행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7429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ㅁ-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