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필(李斗必)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716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두필 일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영도구 신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9월 중순에 제2사단으로 입대하여 사단교육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서울 영등포에 설치된 통신학교에서 주특기 교육을 수료함으로써 통신병으로서 전문지식과 기술을 취득했다.
제2사단은 동년 11월 5일에 안동지역으로 이동하여 태백산 지구일대에서 활동하는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작전임무를 완수하고 1950년 4월 14일에 충남 대전으로 복귀했다. 이두필 일병이 소속된 통신대는 사단에 통신 지원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국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 걸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방어체계가 붕괴되자, 육군총참모장은 방어계획에 의거 후방의 사단들을 전방방어지역으로 증원토록 조치했다. 제2사단은 신속히 의정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제7사단을 증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사단은 우선 이동이 가능한 제5연대를 투입했다.
이두필 일병이 소속된 통신소대는 통신지원을 위해 온양에서 제25연대를 따라 이동하여 26일 오전 11시에 의정부 남쪽 백석천에 투입되었다. 이미 국군 제7사단이 붕괴되었고, 축차적으로 투입된 제2사단 장병들도 축성령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서울 창동으로 철수했다. 그는 6월 27일 오전부터 창동방어선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역부족으로 야간에 미아리 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제2사단은 6월 28일 새벽에 미아리 방어선이 붕괴되고 한강교마저 폭파된 상황에서 개인 및 소부대단위로 개인화기만을 휴대한 채 신사동에서 한강을 건너 우면산-말죽거리로 철수했다. 이후 7월 2일에 한강방어선에서 철수하여 평택으로 이동하였고, 그곳에서 부대로 재편성 및 재정비를 한 후 진천-청주-보은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7월 20일에 북한군의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이두필 일병은 보은 일대에서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8월 20일에 전사했다. 당시 제2사단은 제2군단을 창설하면서 그동안 피해가 컸던 관계로 해체되고, 사단사령부는 대구지구 방어사령부로 개칭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면-0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ㅋ-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