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진(이두진)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3912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두진 중위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휴전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되던 1952년 4월 중순에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광주의 육군보병학교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52년 11월 22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이두진 중위가 부임할 무렵 사단은 수도고지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의 전차포격과 6천여 발의 포탄이 고지 일대에 쏟아지는 가운데 이두진 중위의 지휘 아래 장병들은 적의 진내로 돌입하였다. 접전이 벌어지기 직전, 중공군의 전차포 사격을 받아 엄체호가 무너지면서 많은 장병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이 중위는 무너진 흙더미를 헤치고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적중에 뛰어들어 수류탄과 총검으로 격렬하게 싸웠다. 이날 밤 10시경 아군의 진내사격이 가해지자 중공군은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이 중위와 장병들은 무사히 본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수도사단은 10월 25일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부대정비와 훈련을 마친 후 사단은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두진 중위와 사단 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일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7월 14일 사단은 양개 연대로 한·미군의 포병·항공지원 등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협조된 공격을 개시하여 오후 3시경 117A번 도로 북쪽 능선을 점령하였다.
이 중위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소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병사들을 이끌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두진 중위는 1953년 7월 14일 김화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진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62023 육)을 추서하고 위패(22판-2면-93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ㅍ-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