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진(이두진)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100733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두진 이등중사는 1927년 7월 24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7월 31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이등중사는 1950년 3월까지 경북의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서 북한의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어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백암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면서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2월 21일 시작된 유엔군의 킬러작전 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군 봉화산에서 혈전을 벌였다. 그리고 유엔군의 리퍼작전 때는 하진부리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며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가리봉, 한석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가리봉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장병들은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다 적탄에 맞아 5월 1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진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7면-355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ㅋ-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