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지(이두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50427
  • 전몰일자 : 19511026

공훈사항

이두지 하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거제군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하사는 1950년 12월경에 입대 후 진해에 있는 제7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의 부대 전입 당시, 제9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고, 국군과 유엔군은 37·38도선 일대에서 적군과의 공방전을 벌였다.
이후 제9사단은 강릉 일대에서 공격작전을 펼쳤고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9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에 미주리(Missouri)선(가리봉산∼인제 북방∼원통 북방∼미시령∼속초를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 결과로서 사단은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하였다.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의 결과로 제3군단이 해체되어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했다.
제9사단은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65군 예하 제165사단과의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하였다.
사단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하여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이 하사는 진지를 지켜내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10월 26일에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지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ㅁ-02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