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준(李斗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03375
  • 전몰일자 : 19511125

공훈사항

이두준 일병은 1927년 10월 25일에 제주도 북군 조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두준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하순, 제9연대는 진주에 지휘소를 두고 경상남도 지리산 동남쪽 지역에 대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당시 제11사단은 3단계로 구분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단계 작전은 1950년 10월 1일∼10월 30일까지로 행정기관의 복구 및 적정을 수집하는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의거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들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는 한편,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공비 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제3단계 작전은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게릴라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 집중한 시기였다. 특히 제9연대는 1951년 3월 17일 화학산 일대에서 게릴라 지도급 인사를 포함하여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이두준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였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를 속초-간성 일대에서 저지하다가 25일에 철수하여 양양 북방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5월 7일부터 반격하여 마등령-989고지를 탈취했다. 그리고 5월 16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공세로 다시 철수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중순까지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후 이두준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상급부대 작전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8월 17일부터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884고지를 공격하여 8월 24일에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25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1면-2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ㄹ-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