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용(이두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203939
  • 전몰일자 : 19500902

공훈사항

이두용 일병은 경기도 인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두용 일병은 임진강 도하작전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3사단은 7월 4일 새벽 같은 시간에 공격을 개시,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였다. 이에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한때 이들을 일제사격으로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두용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은 10일 낮부터 철수를 단행하여 괴산 북쪽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7월 17일에는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8월 초부터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였다. 이 무렵 대구 정면의 북한군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다. 제12연대는 유학산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반복하였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두용 일병과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이 일병은 달려드는 북한군을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봉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두용 일병은 1950년 9월 2일 대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4판-3면-1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ㅌ-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