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용(李斗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9298559
  • 전몰일자 : 19530630

공훈사항

이두용 상병은 경상북도 영천군 대창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1950년 7월 초에 창설된 제1군단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아군은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창설하고 28일부터 한강 선에서 방어전투를 실시하였다. 한강을 도하한 북한군에 밀린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철수하여 수원을 거처 경기도 평택에 도착한 후, 7월 5일 육본 일반명령 제2호에 의거 제1군단으로 개편되었다.
이두용 상병이 배치된 군단은 9월 하순부터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기계-강릉을 도착할 거쳐 10월 1일 예하 제3사단을 선봉으로 38도선을 최초로 돌파하고 미 제10군단이 때까지 원산항을 확보하기 위하여 안변, 용포리, 용탄리 및 용탄강 입구를 주저항선으로 하고 영흥을 확보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문천, 영흥, 정평, 함흥 및 파춘장, 흥남 축선을 따라 진격하여 북한군을 섬멸하였다. 11월 27일에는 수도사단이 청진을, 11월 30일에는 제3사단이 압록강 연안의 혜산진을 점령하였다.
1952년 지형능선과 수도고지에 대한 제한공격이 무위로 끝난 후 전선은 8월 초까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두용 상병이 소속된 군단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강화에 주력하였으며 6일부터 8일까지 수도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수차례 반복하였다. 이와 같이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 상병이 소속된 군단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다가 중공군의 전초진지 공격에 대하여 제한된 규모이지만 집중적인 공격을 재개하였다. 6월에 들어 군단은 금성 돌출부 중 교암산 동쪽 765고지로부터 지형능선 남쪽 690고지-수도고지 남쪽 663고지-북한강에 이르는 금성천 북방 주저항선을 방어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두용 상병은 1953년 6월 30일 금성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용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65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7-ㅋ-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