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옥(李斗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8101186
  • 전몰일자 : 19511116

공훈사항

이두옥 일등중사는 1931년 9월 18일 경상북도 경주군 양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8월 1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3월까지 경북의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서 북한의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어 9월 14일까지 동해안 축선의 강구, 영덕, 흥해,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백암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후 연대는 1951년 3월까지 영월, 평창, 횡성 일대를 오르내리며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연대는 유엔군의 공세계획에 따라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한석산을 지켜냈다.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강원도 양구군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서희령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연대는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작전,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했다. 이 일등중사는 11월 16일 소규모 적이 침투공격을 해오자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적을 무찌르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옥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5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ㅍ-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