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영(이두영)

  • 군별 : 육군
  • 계급 : 특무상사
  • 군번 : 1101642
  • 전몰일자 : 19500629

공훈사항

이두영 특무상사는 1926년 2월 8일 충청북도 제천군 제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1946년 11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경기도 양주에 주둔 중인 제1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제1여단은 1949년 2월 1일 수도여단으로, 동년 5월 12일 수도사단으로, 동년 6월 10일 제7사단으로 개칭되어 동두천, 포천 축선의 38도선 방어임무에 투입되었다. 당시 북한군은 남한의 불안을 양성하려고 5월 초부터 38도선 충돌사건을 야기하면서 개성 및 옹진사건에 실패하자 6월 12일에 포천 일대 사직리로 약 200명의 병력을 침투시켰으나 제1연대가 이를 공격하여 대부분 격멸함으로써 적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제7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사단의 예비였던 제3연대가 1950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대신 제2사단 제25연대가 사단에 예속되었으나, 주둔지 수용시설 문제로 아직 충남 온양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사단은 예비연대가 없는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군은 사단 정면에 주공인 제1군단의 주력을 투입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제7사단의 주저항선은 개전 초일에 무너지면서 포천, 동두천이 함락당했고, 둘째 날인 6월 26일에는 제2사단(-)이 축석령에 투입되었으나 적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철수함으로써 의정부가 함락되었다. 이두영 특무상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육본 직할 경비부대 병력과 혼성으로 편성되어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만 전개하던 중, 일시적인 공격으로 전환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기도 했으나, 곧 이은 적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했다. 6월 27일 창동방어선과 미아리방어선이 붕괴되면서 한강 이북에 투입되었던 부대들은 6월 28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이두영 특무상사는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한강 남안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6월 29일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영 특무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3면-2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2-ㅋ-06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