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영(李斗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00727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이두영 일등중사는 1926년 8월 5일에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진행 중이던 1951년 3월 22일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두영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적 1951년 5월 공세 때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하면서 캔자스선으로 진격하며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사단은 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서 6월 4일부터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6월 17일까지 14일간의 격전 끝에 목표인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잇는 新캔자스선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사단은 8월 초순 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를 하면서 수색정찰을 강화했다.
이 무렵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양구 지역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 전투에서 제5사단은 가칠봉-서희령 전선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제3사단에 인계하고, 1952년 1월 23일부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다가, 적이 7월 10일 야간에 침공하여 진지가 피탈되었으나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5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4월 15일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했다. 사단은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면서 주진지와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중공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 및 오봉능선과 삼각봉을 공격해 왔다. 이에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을 격퇴했다.
중공군은 6월 10일부로 제60군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개시했다. 사단은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결국은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강원도 김화 일대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두영 일등중사는 6월 15일 소대원을 통제하며 상·하급부대와 통신망 확립을 위해 무전기를 정비 중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영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4판-8면-0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ㄴ-02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