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영(李斗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800277
  • 전몰일자 : 19500716

공훈사항

이두영 일등중사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번과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할 때,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인 1949년 1월 중순, 경기도 시흥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두영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동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에 예속되었다가 동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했다. 당시 연대는 64km의 정면을 담당했는데, 예하 2개 대대(1, 3대대)를 전방에 배치하고, 1개 대대(제2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되어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면적인 포격에 이어 침공했다. 옹진반도에는 북한군 제6사단 1연대와 제3경비여단을 투입했다. 연대 장병들은 병력 및 화력의 열세를 무릅쓰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아침 부포항에서 해군 LST를 지원받아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이두영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 오산과 평택 사이의 갈곶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 제105전차 및 제4보병사단은 7월 5일 미 스미스특수임무부대의 죽미령 방어진지를 유린하고 통과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장병들을 독려하며 선두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지휘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에 연대는 명에 의거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7월 11일에 보은에서 상주로 이동하여 국군 제1사단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반면 북한군 제15사단은 7월 10일에 조공인 제50연대를 보은으로, 주력인 제45, 48연대는 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도로로 기동했다. 그들은 초기전투 승리에 도취되어 경계를 소홀히 하면서 7월 15일에는 괴산에 도착했다. 당시 이두영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상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는 연대의 선두에서 첨병소대 임무를 수행했으며, 다음날인 7월 16일에 이동 중 적 정찰대와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루었으며,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영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8095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ㅋ-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