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영(李斗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0213187
  • 전몰일자 : 19530529

공훈사항

이두영 이등상사는 1934년 6월 4일에 강원도 삼척군(現 삼척시)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하고 있던 1950년 9월 25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두영 이등상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영남지역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후 사단은 1950년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 상 춘천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하는 아군의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에서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9월 초부터 시작된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사단은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52년 1월 23일부로 제5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351고지가 피탈되었으나 몇 차례의 역습을 전개하여 재탈환하면서 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에 접어들어 제5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철원군 김화 일대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했다.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사단의 전초진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왔다. 그러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6월 10일 하계공세 전까지 전초진지와 주진지 보강을 계속했다. 이두영 이등상사는 복무기간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전초진지인 김화지역 텍사스고지를 보강 중 5월 29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영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5208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4판-5면-2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5-ㅌ-03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