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영(李斗永)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15

공훈사항

이두영 경사는 1924년 3월 3일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철도경찰 소속으로 재직 중 대천에서 전사했다.
1949년 4월 22일 내무부 치안국은 치안국 직속으로 철도경찰본대를 두고 용산, 청량리, 인천, 개성, 대전, 곡성, 광주, 목포, 순천, 대구, 안동, 부산에 지방철도경찰대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철도경찰에게 부여된 주 임무는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철도경찰대 본대는 모든 지방철도경찰대에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곡성철도경찰은 곡성역 일대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며 곡성-장항, 곡성-대전을 잇는 철도 경로 상의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에 임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국군은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7월 3일까지 한강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지연하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북한군은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한반도 서측 축선을 따라 남하하여 7월 6일 평택을 돌파하고, 7월 7일 당진을 돌파하고, 7월 8일 홍성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곡성·군산 철도경찰은 전북 비상경비사령관의 지시에 의거 지역별 철도경찰병력의 일부를 보령에 투입하여 철로 방호와 적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적은 홍성을 중심으로 3개 방면으로 남하했는데 이 경사는 7월 9일 제1경찰기동대에 편성되어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서측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7월 10일부터 북한군과 아군 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는데, 이 경사의 기동대는 홍성에서 적에 맞서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7월 12일 보령으로 일단 후퇴하여 차후작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7월 14일 보령 일대에서 북한군과 아군 간 다시 한 번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 경사의 기동대는 적 4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고 대천항 쪽으로 후퇴하면서 적을 저지하다가 이 경사는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영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ㅎ-01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