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신(李斗信)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75137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두신 하사는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에서 1931년 11월 28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12월 17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제8사단 제21연대는 1953년 2월경, 강원도 김화군 수도고지 일대에 있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간에 수차례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의 고지이다. 제8사단의 배치 당시 수도고지는 소강상태였고, 적의 공격 징후를 5월 초순부터 간파한 사단은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강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아군의 생각대로 1953년 5월 13일 중공군이 공격해왔다. 그러나 594고지, 647고지 지형고지가 적에게 피탈되었고, 아군은 강력한 역습부대를 편성해 화력 양동 작전을 펼침으로써 고지를 재탈환하고자 했다.
제8사단은 1953년 6월 12일 중공군의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수도고지를 피탈 당했다. 이후 7월 13일 중공군은 정전을 앞두고 최후의 공세를 실시했다. 이들은 5개 사단을 동원해 국군 6개 사단이 배치된 중부전선 금성지구를 공격했다. 금성지구의 전방에는 제8사단과 제6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의 전방으로 중공군 2개 군 이상이 위치했다. 당시 제21연대는 교암산 후방에서 예비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적군은 1953년 7월 13일에 공격을 시작했다. 제8사단은 금성지구의 좌·우측방으로 중공군이 우회하며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21연대 장병들은 제10연대, 제16연대의 철수를 엄호하며 금성천 남측 방면으로 철수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철수와 동시에 주포리-백암산 일대에 방어선을 전개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제8사단은 7월 16일을 기점으로 무명고지를 향해 돌격을 개시하였고 적 5개 소대 병력과 25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섬멸했다. 또한, 제10연대와 합류하여 돌격하며 적을 완전히 격퇴하고 마침내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1953년 7월 17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금화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신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4면-86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6-ㄹ-04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