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식(李斗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4939
  • 전몰일자 : 19501007

공훈사항

이두식 일병은 경상북도 월성군 양남면에서 1926년 12월 2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강동지구를 우회하여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당시 21연대는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낙동강 지역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제21연대는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1950년 8월 보현산, 용마산 부근을 향해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8사단은 이를 저지함으로써 연대는 의성군 일대의 북한군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
경상북도 영천군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 영천 북방에서 강력한 공격을 실시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후퇴하여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영노동, 작산동 선에 위치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했다. 이후 제21연대는 패주하는 북한군을 추격하는 동시에 영천부근의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국군은 1950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국군의 군사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구산동 전투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제8사단은 포위, 압박하며 공격하였고 북한군은 1950년 9월 24일에 240고지에서 전초진지를 구축하여 강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고 의성시내로 패주했다. 제8사단은 안동에 침입해 패주한 북한군을 격퇴하고 1950년 9월 27일에는 영주를 향하여, 다음 날에는 풍기 서북방의 15km 지점 939고지에서 패주하는 북한군을 섬멸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을 완전히 섬멸하고자 충북지구에서 6일 만에 양평지구에 도달하고 1950년 10월 3일에 서울에 진출하며 동두천에서 부대 재정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병은 국군의 선봉으로 전투에 참여하다 적의 총탄에 맞아 1950년 10월 7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ㅎ-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