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승(이두승)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1778
  • 전몰일자 : 19520507

공훈사항

이두승 하사는 1932년 11월 15일 충청남도 예산군 오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에,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1년 11월 12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캔자스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이었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연대는 28일까지 수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1952년 2월로 접어들어 미 제8군은 전선의 침체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포로획득에 목적을 둔 ‘유인작전(Operation Clam Up)’을 계획했다. 이에 따라 제3연대는 1952년 2월 11일 중공군을 크리스마스고지로 유인하여 타격을 주려 하다가, 오히려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13일까지 수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2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린 이후 전투는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고지쟁탈전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휴전회담이 지속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적진에 대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 수색정찰 등을 지속했다. 박 하사는 1952년 5월 7일 적진에 대한 위력수색작전 중에 적의 기습을 받자, 분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승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65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ㄴ-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