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세(李斗世)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27558
  • 전몰일자 : 19530713

공훈사항

이두세 일등중사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실시하던 1950년 11월 11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두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1월 7일에 재창설된 제2사단의 예하 부대로 편성되어 포천-의정부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소탕을 위해 투입되었다. 이후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리고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 안동으로 이동하여 후방지역작전을 했다. 사단은 1951년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다시 전방작전에 투입되었고,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적근산-육단리까지 진격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사단은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금성-금화 진격전으로 금성 서남쪽 직목동까지 진출했다.
제2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2년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했다. 이곳에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한 후 11월 24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수차례의 공방전 끝에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그리고 12월 30일부로 고대산 전방의 독서당리에 배치되어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후 1953년이 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공산군은 6월 중순이 되자 휴전협상이 타결되기 전에 주요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공세를 감행했다. 중공군은 6월 29일 밤에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공격했다. 당시 화살머리고지는 제32연대가 방어했는데, 적에게 돌파당했다.
이두세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6월 30일 오전 7시에 화살머리고지(281고지) 일대의 돌파된 지역을 역습하여 진지를 회복했다. 그리고 방어진지를 제32연대에 인계하고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이후 중공군은 7월 6일에 제2차 공격하여 다시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했으나, 사단의 예비였던 제17연대가 다시 투입되어 5일간의 격전 끝에 7월 11일 야간에 고지를 회복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월 13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세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64659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4면-125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ㅌ-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