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성(이두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802436
  • 전몰일자 : 19500906

공훈사항

이두성 하사는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훈련만 받은 후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두성 하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제1연대와 제18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수도사단은 7월 17일 보은을 거쳐 7월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계속 공격해오자, 사단은 8월 1일 안동 북쪽 일대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8월 3일 길안과 청송 일대에 新방어선을 설정하고 이곳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했다.
이후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했다. 수도사단은 8월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격전 끝에 기계를 탈환했다.
제18연대는 북한군의 9월 공세의 일환으로 적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연대는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했다.
이어서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했다. 이두성 하사와 부대원들은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했다. 이후 12월에 접어들어 연대는 북한지역을 포기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후방지역이 중공군에 의해 차단되면서 해상 철수를 위해 흥남에 집결했다. 이때 이두성 하사는 청진 일대에서 중공군과 조우하여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얼마 후 그는 건강을 회복하여 1951년 2월 초순경 제주도에 위치한 제1훈련소 제8교육대로 전속되어 훈련병을 양성하는 조교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적 게릴라들에 의한 후방교란이 심하여 인근지역에 대한 공비소탕 작전에도 수시로 참가했다.
특히 중공군의 총공세와 때를 같이 하여 적 게릴라들은 주요시설 습격 사건을 빈번히 일으켰으며, 후방지역에서 더욱 적극적인 습격활동을 실시했다. 제1훈련소 제8교육대 기동타격대는 1951년 9월 6일 한라산 일대 적 게릴라 소탕 작전에 출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두성 하사는 격멸조장으로 조원들을 통제하며 적 게릴라들과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성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4면-865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ㅁ-039)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