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성(李斗盛)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4298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이두성 일병은 1923년 1월 12일에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에서 출생하였다.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하여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제7사단은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에 사단은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혈전을 벌였지만 적의 탱크를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탄약마저 고갈되어 후방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낙동강 남쪽 반변천 일대에서 북한군과 교전하였고, 이에 북한군은 8월 5일을 기점으로 8월 공세를 개시하였다. 연대는 진지 측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 제12사단과 전투를 이어가며 의성으로 철수했다. 그 결과로서 의성-영덕 사이에 큰 전선의 공백이 발생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남하해 8월 9일에 기계를 점령하고 11일에는 포항을 점령했다.
북한군의 9월 공세 당시 연대는 경주 북방의 호명리 일대에서 9월 9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을 격퇴하였다. 이에 따라 사단은 낙동강 전선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적탄에 맞아 1950년 9월 1일에 안타깝게도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성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1-ㅍ-08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