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성(李斗星)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20260
  • 전몰일자 : 19521120

공훈사항

이두성 이등중사는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에서 1926년 8월 30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6월 8일에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입대한 이후 제8사단 장병들은 휴전회담 직후 유엔군 방어선의 취약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제한목표 공격’의 일환으로 강원도 인제군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북한군의 전초기지를 공격하며 3차에 걸쳐 고지쟁탈전을 전개하고 1951년 9월경에 6개의 봉우리를 모두 점령하였고, 제7사단과 함께 1951년 9월 24일부터 10월 1일까지 강원도 양구 북방의 백석산에 배치된 북한군을 격퇴했다. 제8사단은 전선을 우측 단장의 능선과 문등리 계곡을 감제할 수 있게 되어 군단의 주공사단인 미 제2사단의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경기도 남양주군 퇴계원면에서 잠시 부대를 정비하였다. 제8사단은 1952년 3월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으로 이동했다. 1952년 3월에 접어들면서 휴전회담은 비행장문제, 중립국감시위원단 구성문제, 포로문제로 인하여 교착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이는 이러한 쟁점이 쌍방에게 군사적 승리를 대신한 정치적 승리를 핵심목표로 두었기 때문이다. 협상이 정체되자 유엔군 측에서는 이들 3가지 문제를 한데 묶어 일괄타결하기로 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일괄타결이야말로 정체 상태에 빠져든 휴전협상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시기에 제8사단은 1952년 3월 23일에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그리고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1952년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심리전을 벌였다. 이후 제21연대는 1952년 9월까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대북방송을 통한 심리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항공기로 폭격을 가하며 진지 보수와 적정파악을 위한 소규모 수색작전 또한 진행했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적군은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2년 11월 20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성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ㄹ-00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