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석(이두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89173
  • 전몰일자 : 19510523

공훈사항

이두석 일병은 1929년 2월 20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3월 14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38도선 상의 현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사단은 4월 중순 한계리, 가리봉, 한석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인제 동남쪽의 가리봉과 한석산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사단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적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수많은 장병들이 전사한 가운데 5월 20일 하진부리까지 철수해서야 겨우 병력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일병은 수색대원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신병임에도 모든 작전에 용감하게 앞장섰다. 그는 이 전투에서도 앞장서서 적정을 탐색하며 적의 포위망을 뚫다가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23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3판-40면-2174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ㅎ-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