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삼(李斗三)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85466
  • 전몰일자 : 19510406

공훈사항

이두삼 상병은 충청남도 대덕군 유천면에서 1929년 2월 13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상병은 1951년 1월 5일에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당시인 1951년 2월경에, 제8사단은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38도선 상의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홍천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안전한 진지 구축이 어려웠으나,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제8사단은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를 완료한 제10연대 장병들은 2월 강원도 횡성군에 주저항선을 설치하고 적의 공세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중공군은 1951년 2월 11일부터 제4차 공세를 가해왔는데, 당시 10연대는 중공군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포위되어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결국 제8사단 10연대는 이 전투에서 제8사단의 지휘부를 비롯한 장교 300여 명과 사병 7000여 명이 전사·실종되고, 남은 인원은 3000여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후 제8사단 잔여 병력은 대구로 이동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부대를 재편성 한 후 육군본부 직할대로 소속이 변경되어 후방경계임무에 투입되었다. 유 일병과 제10연대 장병들은 전력 보강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이들은 민가, 도로, 행정 시설 등에 대한 유격 활동을 전개했는데, 당시 금산·정읍·순창·부안군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함에 따라 공비는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이 상병은 공비토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1951년 4월 6일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삼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5면-183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ㅊ-09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