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병(李斗炳)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807310
  • 전몰일자 : 19530323

공훈사항

이두병 이등중사는 1931년 1월 8일 경기도 강화군 불은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3월 6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두병 이등중사기 소속된 사단은 1952년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해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장병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부대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으나 수도고지를 함락당하고 말았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그는 앞장서서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연대는 25일 주저항선을 제8사단에게 인계하고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미 제8군 예비로 전환되었다. 이두병 이등중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쌍방은 상대방에 대한 기선을 확보하고 방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상대 정보 파악이 중요시 되었다. 이를 위해 정찰전과 아울러 전초의 전술적 운용이 지상 작전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특히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이두병 이등중사와 일부 병력은 정찰도 중 북한군 정찰대와의 작은 충돌로 전투가 확대되어 쌍방 간에 수 시간 동안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그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두병 이등중사는 1953년 3월 23일 김화 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병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ㄴ-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