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배(李斗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481
  • 전몰일자 : 19500815

공훈사항

이두배 일병은 경상북도 영천군 신령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50년 2월 초순, 서울 용산의 수도경비사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한 후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쪽의 42km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신속히 어론리 북쪽의 주저항진지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전투력에서 북한군보다 훨씬 열세했지만 용전분투하여 인제에서 홍천에 이르는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7월 5일까지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 진출을 지연시키고자 했다.
이두배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명령에 의해 이화령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충주-문경-함창 방면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제13사단을 저지·지연시키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연대는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루며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낙동강방어선 상의 용기동으로 이동했다.
이두배 일병은 제2연대 장병들과 함께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8월 8일에 선돌주막지역에서 2개 대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했으나, 8월 12일 22시를 기해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전투를 13일 새벽까지 수행했다. 이후 전투력 열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감제고지를 연결하는 선에 배치되었다. 그는 8월 15일 새로 점령한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5면-0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ㅈ-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